2015년 초, 뒤늦게 아이폰 6 플러스를 갖게 되었다.
통신사와 카드사의 노예가 되기 싫어서
언락폰을 일시불로 사느라
발매된지 3개월이 넘어서야 겨우 가질 수 있었다.
새 아이폰의 비닐을 떼어내는 설렘을 만끽하며
해외직구로 마련한 리락쿠마 케이스를 씌우며
주변의 시선을 마구마구 끌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선도 과거의 영광일 뿐...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제는 낡고 닳아서
보고 있기에도 안쓰러운 리락쿠마 케이스는
맡은바 소임을 다 하고 장렬히 산화해버렸다.
잠깐, 맡은바 소임?
아이폰 케이스의 소임은 아이폰을 보호하는 것인데
리락쿠마 케이스는 아이폰을 지켜주지 못했다.
리락쿠마 케이스의 맡은바 소임은 "예쁨"이었을것이다.
'그 동안 예뻤으니 됐다.'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켰다.
"터미네이터세요?"
눈알 다 튀어나온 카메라와 휘어버린 뒷판,
액정화면에 뜬 휘양찬란한 무지개가
여전히 주변의 시선을 마구마구 끌었다.
터치도 먹히지도 않는다.
전화를 걸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스마트폰은 커녕 단순한 전화기로서의 기능도 잃었다.
출근길에 늦어서 서둘다가
젖은 대리석 바닥에서 크게 넘어졌다.
공중에 몸이 붕 떴고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오른손으로 땅을 짚으며 떨어졌으니
이렇게 부숴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 부덕의 소치인 것이다.
리락쿠마 껍데기(?)를 벗겨놓고 보니
겨우내 입었던 내복을 벗은 것처럼 허전했다.
앞으로가 문제였다.
보험을 가입하지 않아서 리퍼비용이 상당했고
새로 사려 해도 아이폰7이 나오느니 마느니 하는 마당에
지금 아이폰6S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나서기로 했다.
아마존에서 구입한 액정과 뒷판 케이스를 이용하여
내 손으로 고쳐보기로 했다.
실패하면 바로 아이폰SE로 가는거다!
우선 작업 전에 백업을 해야했다.
아...터치가 안 먹혀서
밀어서 잠금해제도 못 하는 걸 깜빡했다.
백업은 실패한채로
아이폰 자가수리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새 액정과 함께 들어있는 도구들...
기타피크같이 생긴 물건은 기타피크가 맞다.
아이폰의 나사는 별모양이라던데,
정말로 별모양 드라이버가 들어있었다.
이렇게 맞춰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니
별모양 나사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나사 끝에 묻어 나온 파란 것은 뭐지?
무슨 기능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파란 잉크가 나에게 말 해주는 것 같았다.
'당신은 이 순간부터
애플의 정식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팍 하고 떠올랐다.
온갖 여행사진, 신혼여행사진, 업무관련사진이
아직 아이폰 안에 있다!
망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스승 유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허준의 마음으로
아이폰을 열기 시작했다.
(계속)